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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과 양반들-뱅뱅사거리 (방랑가)[가사/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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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과 양반들-뱅뱅사거리

전범선과 양반들이 제3집 " 방랑가(타이틀곡,뱅뱅사거리) " 를 발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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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과 양반들-뱅뱅사거리

전범선과 양반들 제3집 《방랑가》에 부쳐.
범선이 병신년(2016년) 입동 무렵 마지막 잔치판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벌이고 홀연히 사라진 지가 어느새 일 년이 되었다. 잔치가 끝나자마자 범선은 '양반들'과 나를 비롯해 가까운 벗 몇몇만 조용히 불러 이르기를,

"내가 이제 곧 서울을 떠나야겠네. 앞으로 두 해 동안은 돌아오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자네들은 각자 살 길을 꾀하게."

하였다. 며칠 후 범선의 집을 찾아가보니 그의 집은 흔적도 없이 비어있고 다만 입영 통지서만이 방 한가운데 놓여있었다. 그로부터 한 해가 지나도록 나는 범선 그리고 양반들을 거의 잊고 지냈다. 범선은 가끔 잊을 것 같으면 전보를 부쳐 살아있음만 겨우 알렸다.



올 입동이 막 지났을 무렵 양반들에게서 기별이 왔다. 양반들은 그 사이 범선이 남기고 간 흔적을 더듬어 새로운 판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들이 내민 것은 기어코 완성된 음반 《방랑가》였다. 이 판을 나에게 맡기며 세상에 알려달라고 청했다. 이에 글을 지어 범선과 양반들의 뜻과 음악을 다시 한번 세상에 전하고자 하노라.

내가 범선을 안지는 오래되었으나 그가 남들 앞에서 제 곡조를 펼치기 시작한 것은 기축년(2009년)이었다. 그 무렵 범선은 별다른 악단 없이 강원 첩첩산중에 거처를 마련하고 홀로 기타를 퉁기고 노래했다. 이때 범선은 [설레임]을 막 지어 부르던 어린 소년이었다. 곧 강원을 떠나 미 대륙을 방랑하며 노래를 지어온 범선이 돌아온 것이 계사년(2013년) 여름이었다. 노래할 자리를 찾아 마포나루를 기웃거리던 범선이 장안을 수소문하여 줄 좀 퉁기는 자들과 북 좀 두들기는 자를 모아 꾸린 악단이 '전범선과 양반들'이었다.



범선은 양반의 풍류는 곧 사랑 타령이라고 했다. 갑오년(2014년) 여름 내어놓은 《사랑가》는 아니나다를까 낯 뜨거운 운우의 정을 가감없이 풀어낸 문제작이었다. '명월'을 향한 애달픈 사랑의 곡조는 여염의 청춘을 울리기 충분했다. 그러나 범선의 방랑벽은 그칠 줄을 몰랐다.

다시 한번 모습을 감춘 범선은 한 해가 꼬박 지나고서야 나타나 양반들을 다시 그러모았다. 이번에 그의 손에는 한 장의 포고문이 들려있었다.


"자, 한 번 엎어 보자!"

범선은 북채를 높이 치켜들고 《혁명가》를 불렀다. 수많은 대중이 그의 앞장섬에 뒤따랐다. 음악 좀 듣는다 하는 선비들은 범선과 양반들의 혁명적인 가락을 높이 샀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그해 최고의 록 노래로 꼽혔다.

양반들은 달리는 혁명의 말에 뜨거운 채찍을 가하고 싶었다. 하지만 범선의 운명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또 다시 모습을 감추고 방랑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두 해를 기약했다. 양반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그가 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이 년을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다."

기타를 집어들고 떠나버리는 양반도 있었고, 범선과 양반들의 명성을 듣고 새로 찾아오는 양반도 있었다. 범선은 간혹 아무도 모르게 뱅뱅사거리 집에 들렀다. 양반들이 급히 소식을 듣고 달려왔을 때 범선은 매번 곡조만을 남겨두고 이미 떠나고 없었다. 양반들은 이 곡조를 모으고 다듬어 《방랑가》를 엮었다.

《방랑가》는 《사랑가》와도 다르고 《혁명가》와도 다르다. 달 어두운 밤에 속삭이는 사랑의 노래도 아니고, 광장에 사람을 모아놓고 외치는 혁명의 노래도 아니다. 《방랑가》는 짝도 동지도 없이 홀로 방랑하는 나그네의 기록이다.

나그네는 전국팔도의 떠들썩한 장터와 고요한 산중에서 곡을 얻어왔다. 봉산탈춤 추던 먹중의 말을 노래 삼았고, 나도향의 소설과 이쾌대의 그림에 감응하기도 했다. 김성동을 읽고는 [만다라]를 읊으며 목탁을 치더니 정호승을 읽고는 이내 십자가를 진 [서울의 예수]를 노래한다. 하지만 그 가운데 어느 하나도 나그네를 묶어 가두지는 못한다. 태평하게 여인과 입 맞추어 [늴리리야]를 부르는 것도 잠시, 가는 곳마다 [고별]을 이를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명이다.

노래를 받치는 양반들의 가락은 거칠고 날카롭다. 분명 한 줄기인 듯하나 곡마다 가지를 치는 태는 다른 것이 마치 이곳 저곳을 떠도는 나그네의 발걸음과도 같다. [지화자]와 [뱅뱅사거리] 오음계의 뿌리는 미국 남부의 목화 농장인지 조선 농부들이 모심던 논인지 딱 잘라 말하기가 쉽지 않다. [물레방아]의 일그러진 기타는 "록-큰롤은 섹스이노라" 가르치던 옛 선현의 소리를 닮았다. 그런가하면 [고별]을 보건대 양반의 풍류가 그간의 노래들과 아주 달라지지만은 않은 듯 하다.

범선이 방랑하며 노래하는 까닭은 나도, 양반들도, 어쩌면 범선도 알지 못한다. 《방랑가》는 아마 그 답을 얻기 위한 구도의 부산물이리라.

범선은 아직 소요산 자락에서 머리를 민 채 곡을 쓰며 은거하고 있다.

정유년(2017년) 겨울
전범선과 양반들의 오랜 벗 아무개 씀.

전범선과 양반들 - 방랑가

1. 지화자 (Jihwaja)
2. 나그네 (Vagabond)
3. 물레방아 (Water Wheel)
4. 뱅뱅사거리 (Bang Bang Circus)
5. 만다라 (Mandala, 曼茶羅)
6. 서울의 예수 (Jesus of Seoul)
7. 이쾌대 (Lee Quede, 李快大)
8. 늴리리야 (Niliria) feat. 안예은 (An Ye Eun)
9. 고별 (Farewell, 告別)

 

[출처:지니뮤직]

 전범선과 양반들-뱅뱅사거리 [가사/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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