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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2ny (페니)-Closing Nu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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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2ny (페니)-Closing Number
Pete Rock, J Dilla위대한 비트메이커들의 위대한 유산들에 바치는 오마쥬
Pe2ny [Hommage]특별한 순간들이 있다. 그로 인해 이후 인생의 방향이 정해진다거나, 고유의 취향이나 개성이 형성되는 계기가 된다거나 하는. 내게도 역시 몇몇 순간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90년대를 지나면서 일어난 일들이다.
이를테면 중고교 시절에 AFKN을 통해 '헤비디(Heavy D)', '바비 브라운(Bobby Brown)'의 뮤직비디오를 처음 봤던, 혹은 '보이즈투멘(Boyz II Men)'이나 '테빈 캠벨(Tevin Campbell)'의 씨디를 처음 구입해서 들었던 때라거나, 여기서 좀 더 시간이 지나 '나스(Nas)'의 [Illmatic]이나 '우탱클랜(Wu-Tang Clan)'의 [Enter The Wu-Tang (36 Chambers)], 또 '슬럼빌리지(Slum Village)'의 [Fantastic vol. 2] 같은, 힙합 클래식으로 회자되는 위대한 음반들을 처음 들었던 경이적인 순간들 말이다.
상기한 [Illmatic], [Fantastic vol. 2] 등의 레코드에서 엠씨들의 출중한 랩 이상으로 내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희대의 비트메이커들이 섬세한 터치로 주조해낸 샘플링 기반의 비트들이었다. 피트록(Pete Rock)'이 만든 'World is Yours' 비트의 풍부한 재즈 바이브, 지금은 저 하늘의 별이 된 故 '제이딜라(J Dilla)'가 만든 'I Don't Know'와 같은 트랙들의 따스하면서도 도회적인 무드. 이들은 선구자 '쿨 디제이 허크(Kool DJ Herc)'가 음악의 특정한-주로 댄서블한-구간을 잘라 반복적으로 재생해 새로운 무드를 만들어내는 브레이크(Break)라는 개념을 창안한 이래 이에 영향을 받은 힙합 음악의 샘플링이 얼마나 섬세한 방식으로 발전해왔는지, 또 어떻게 소울, 훵크, 재즈, 블루스 등 과거의 유산들을 이 시대로 재차 소환해 도시와 거리의 사운드트랙으로 자리매김시켰는지를 생생히 증거한다.
한국에도 이에 경도되고 영감을 받아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온 많은 음악가들이 있다. 비트메이커/프로듀서 ‘페니(Pe2ny)’ 역시 그 중 한 사람. 90년대 후반 하이텔의 흑인음악 모임 ‘BLEX’(한국 힙합의 뿌리와 같은 곳이다)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 ‘DJ 소울스케잎(DJ Soulscape)’, ‘디지(Deegie)’와 함께 프로젝트 그룹 ‘PDPB’로 활동을 시작, 이후 소울스케잎과는 ‘소울챔버(Soul Chamber)’를 결성하고 당시 한국 힙합의 성지로 통하고 있던 ‘마스터플랜’ 사단에 합류하면서 음악가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하지만 사실 진정한 의미에서 그의 커리어의 시작은 래퍼에서 프로듀서로 완전히 전향하게 되는 ‘소울챔버’ 해산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본래는 ‘Penny’로 표기했던 아티스트명을 ‘Pe2ny’로 변경한 것도 이때이다) 2001년 첫 EP [Journey into Urban City]를 발표하며 비트메이커, 프로듀서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이후, 다소 더딘 감은 있지만 꾸준하게 작품을 발표해왔다. ‘에픽하이’의 ‘타블로’와 함께 “가상의 영화 OST”를 컨셉트로 함께 만들어내 많은 찬사를 받았던 연주음악 앨범 [Eternal Morning] (2007), ‘넋업샨’, ‘마이노스’, ‘키비’, ‘타블로’, ‘더 콰이엇’, ‘팔로알토’, ‘더블케이’, ‘라임어택’, ‘케로원’ 등 당시로서는 엄청난 피쳐링진이 함께한 정규 1집 [ALIVE SOUL CUTS Vol. 1] (2008), 동료 비트메이커 ‘크리스메이즈(krismaze)’와 함께 만든 옴니버스 [Blue Tape] (2014), ‘쳇 베이커(Chet Baker)’의 커버로 유명한 동명의 노래 제목을 딴 두 번째 정규 [Born To Be Blue] (2014), 밤에 듣기 좋은 레이드백(laid back) 성향의 비트들을 담은 소품집 [Night Whisper] (2015), 가장 최근인 2017년 초에는 ‘Alive Soul Cuts’의 두 번째 시리즈로 ‘저스디스’, ‘베이식’, ‘바스코’, ‘Ph-1’, 딥플로우’, ‘마이노스’, ‘DJ 렉스’ 등이 참여한 [ALIVE SOUL CUTS vol. 2 ‘Stereotype’]까지, 그가 발표한 작품들은 하나 같이 충분한 시간을 들여 긴 호흡으로 감상해야 비로소 그 진가를 맛볼 수 있는 밀도 높은 것들이었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본작 [Hommage]는 페니의 디스코그라피를 통틀어 통산 네 번째 정규앨범으로 기록될 작품이다. 본래는 2017년에 본인의 사운드클라우드 계정에서 최초 공개했던 작품이었으나 새롭게 믹스, 마스터링을 거쳐 온전히 정돈된 사운드와 더불어 음원, 음반의 형태로 공식 발매하게 되었다. 이 음반은 제목 그 자체가 의미하듯 페니의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음악가들에 대한 ‘오마쥬’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에게 있어 그 대상은 다름아닌 ‘피트록(Pete Rock)’과 ‘딜라(J Dilla)’였다. 피트록의 [Petestrumental], 딜라의 [Welcome to Detroit] 등에서 특히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건 공교롭게도 이 두 장의 앨범이 BBE Records에서 릴리즈한 ‘비트 제네레이션 시리즈(Beat Generation Series)’의 첫 두 발매작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이 작업에서 비트메이커가 비트메이커에게 오마쥬를 전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가장 비트메이커다운 방식을 착안했다. 피트록이나 딜라가 자신들의 프로덕션에서 사용했던 바로 그 샘플들을 가져와 본인의 스타일로 새롭게 창작하는, 어찌 보면 지극히 단순하지만 동시에 그만큼의 진정성을 담고 있고 무엇보다 더할 나위 없이 ‘힙합적인’ 접근법을 떠올린 것. 앨범의 두 번째 트랙인 ‘Drivin and Vibin’은 이 작품의 컨셉트와 캐릭터를 가장 잘 설명하는 예시가 될 것이다. 페니는 이 트랙에서 미국의 재즈 비브라폰 주자인 ‘개리 버튼(Gary Burton)’의 1973년작 ‘Open Your Eyes, You Can Fly’의 전주에서 비브라폰 소리 일부를 가져와 테마의 한 부분으로 삼는데 이는 피트록이 본인의 2001년작 [PeteStrumentals] 수록곡인 ‘Pete’s Jazz’에서 취했던 방식이다. 두 곡이 이 샘플을 운용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개리 버튼의 원곡이 지닌 청아하고 개운한 분위기와는 달리 그 중 극히 일부의 소리들만을 커팅해 반복적인 프레이즈로 만들어 중독적인 무드를 조성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동일한 샘플, 다른 해석이라는 점에서는 앨범의 후반부에 배치된 ‘Liquid Seoul’ 역시 마찬가지. 피트록이 ‘The Boss’라는 트랙에서 샘플링했던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동명의 곡 ‘The Boss’(70년대 블랙스플로테이션 영화 ‘Black Caesar’의 OST다) 속 인상적인 브라스 라인을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비트에 녹여내고 있다. 이 노래의 또 다른 재미 포인트는 바로 제목인데 재즈 트럼페터 ‘로이 하그로브(Roy Hargrove)’의 대안 재즈 프로젝트였던 ‘The RH Factor’의 1집 [Hard Groove]에 수록된 곡 ‘Liquid Streets’을 교묘히 패러디하고 있다.
‘Alfonzo Surrett’의 80년대 부기 넘버 ‘Gimme Your Love’의 근사한 스트링 파트를 샘플링한 오프닝 트랙 ‘Closing Number’, 재즈 밴드 ‘Placebo’의 곡 ‘S.U.S.’를 샘플링한 ‘Sparkling Candy’ 등에서 느낄 수 있듯 앨범의 전체적인 질감, 무드는 따스하고 부드럽다. 여러모로 레이드백의 성향이 강한 차분한 음악들이면서도 동시에 리듬파트는 충분히 춤을 출 수 있을 만큼의 풍부한 그루브를 품고 있기도 하다. 중반부에 위치한 ‘Home’, 후반부의 ‘Dew’와 같은 트랙들이 자아내는 아련한 향수와 멜랑콜리 또한 페니라는 음악가가 지닌 고유의 정서 중 한 부분으로 봐야 할 것이다.
[Hommage]는 여전히 트랩(Trap) 일변도인 최근 힙합의 경향, 또 소위 ‘디싱’이라 줄여 부르는 디지털 싱글 중심으로 철저하게 재편된지 오래인 음원시장과 이를 소비하는 대중들의 보편적인 정서, 그 어느 쪽과도 철저하게 무관한 작품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길을 고집스럽게 추구하며 기량을 갈고 닦아온 마이스터가 그 섬세한 손길로 한 땀 한 땀 공들여 깎아 만든 ‘작품’ 앞에서 시류니 뭐니 하는 것들이 도무지 무슨 소용일까 싶다. 이 문화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그저 반가운 마음으로, 이 풍부하고 깊은 맛의 ‘소울푸드(Soul Food)’를 만끽해주길 바랄 뿐이다.
글: 김설탕(POCLANOS)
Pe2ny (페니)-Closing Number [가사/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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