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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Tommy [MV/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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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Tommy

요조가 EP [이름들]을 발매하고 타이틀곡 " Tommy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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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Tommy 가사

네가 자고 있을 때 난 여행을 떠나지
별이 많이 뜬 밤엔 산 위에 올라가
점들을 하나하나 이어가며
이상한 별자리를 만들곤 해
구름을 스칠 때면 스산한 물기가
조금만 기다리면 온기에 보송해져
넌 아니? 달빛은 의외로 따뜻해
 
하루 종일 내 멋대로 군다고
넌 생각하겠지만
나에게도 생각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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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저
너와 함께 하늘을
마음껏 날아보고 싶어
나는 너 너는 나
난 너의 날개인 걸
 
네가 얼만큼 옳고 얼만큼 나쁜 인간인지
그건 나에게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닌 거야
곧 없어질 석양을 보듯이 날 보지 마

요조-Tommy

대체로 작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 요컨대 스토리를 말하는 사람으로 이해된다. 덕분에 그가 외부 자극에 얼마나 예민한지가 예술적 감각의 척도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 감각을 잘 풀어내는 것은 또한 기술의 영역이므로, 예술가는 감각과 기술의 밸런스를 성실히 수련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그걸 위해서는 잘 들어야 한다. 따라서 내게 좋은 작가는 잘 듣는 사람이고, 요조는 그러한 작가 중 하나다. 알다시피 그는 꽤 오랜 시간 한겨레에서 인터뷰 코너를 운영했다. 거기서 그는 잘 들었다. 요조는 임경선 작가와 주고받은 편지를 책으로 묶기도 했다. 거기서도 그는 잘 들었다.

그럼에도 ‘듣기’는 구사하기 어려운 고급 기술이다. 쓰기와 말하기보다 훨씬 어렵다. 잘 듣는 일은 상대방을 바라보는 일, 내뱉는 단어와 단어 사이의 간극을 응시하는 일이다. 이 느낌과 그 느낌의 거리를 가늠하는 일이다. 당연히 그 틈이 잘 보이지 않는다. 눈을 크게 뜨고, 아니 귀를 크게 열고 매우 조심스레 애써야 가능하다.

 

 

중요한 것들은 늘 어렴풋하고 흐릿한 곳에 있다. 말이 되지 못한 것들, 단어로 수렴될 수 없는 기쁨과 슬픔, 욕망과 좌절, 혹은 후회와 질투 같은 모순들이 웅크리고 있다. 듣기는 그 흐릿한 장소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일이고, 작가는 거기서 발견한 것으로 무언가를 빚어내는 사람이다.

나는 [이름들]을 들으며 요조가 사람들의 틈을 바라보는 장면을 생각한다. 잠깐. 좀 더 정확히 말하자. 이 노래를 통해 요조가 만난 사람들의 어떤 틈을 엿보는 게 아니다. 내가 보는 것은 그 틈을 바라보는 요조의 옆모습이거나 뒷모습이다. 요조가 거기서 무엇을 찾았는지 나는(그리고 우리는) 알 수 없다. 그것은 온전히 요조의 것이므로. 나는 그저 그의 옆이나 뒤에서 문득, 내게 전해지는 어떤 흔적을 감지한다.

그러니까, 다정함.

요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거기서 발견한 무언가로 이 앨범을 만들었다. 그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들과 함께 만든 것에 가깝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자신의 오른 팔을 ‘토미’라고 부르는 장애인 코미디언에게 “토미”라는 노래를, 팬이라고 하면서 정작 요조가 만들지도 않은 노래를 언급한 사람에게는 바로 그 세상에 없던 노래(“이 정도로”)를 전하는 일이야말로 애초에 그들이 없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이다.

프로듀서 이능룡은 이 다정한 결과물을 세심한 소리로 옮긴다. 그의 표현대로, 이 작업은 ‘크고 작은 시도를 성실하게’ 이룬 결과다. 어떤 소리는 선명하지 않고, 어떤 부분은 쨍한 것 또한 그 결과다. 우리는 ‘흐릿한 장소’야말로 가장 중요한 장소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우리 삶은 사실, 수많은 실수와 낭패와 자조와 좌절로 구성된 우연한 세계에 가깝다. 여기서 우리는 약간의 상냥함과 다정함 덕분에 살아남는다. 운이 좋다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상냥한 듣기와 다정한 마음으로 만들어진 [이름들]은, 적어도 내게는 다음 세계로 안내하는 표지판 같은 것이다.

- 차우진(음악평론가)

1. Tommy

2. 이 정도로

3. 나의 다짐!

4. 짝사랑

5. 혼탁하고 차가운 나

6. Unknown Horses

 

요조-Tommy [MV/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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